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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글-봉화에 다녀와서

2012.09.30 08:18

박지연 조회 수:1791

* 우선 정리된 수용이와 우혁이 글부터 올립니다. 

3일간 봉화에서  (최수용) 

우리반은 9월 23일 일요일에 봉화에 도착했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저번 겨울에 갔을 때는 놀다왔는데

 이번에는 놀러가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사시는 선생님 친구와 그 윗집 일을 도와 주러 가기 때문이었다. 

4시간을 달려 산골짜기에 있는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윗집 햇님 아저씨께 인사 드리고 와서 내일을 위해 일찍 

다. 

다음날이 되었다. 

봉화에서는 우리가 식단을 짜서 2인 1조가 돼서 3일 동안 음식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첫번째 날에 아침 조인

우혁이와 현영이가 아침으로 김치참치볶음밥을 만들어 줘서 맛있게 먹고 고추 닦으러 윗집  햇님 아저씨네 비닐 

하우스에 갔다. 그 작업은 상 앞에 고추를 쌓아놓고 장갑을 끼고 고추 하나하나를 닦아 통에 넣은 뒤, 통이 다 

차면 비닐에 담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조금 힘들다. 고추를 잘못해서 터트리면 눈이랑 코가 꽤 아프다. 그래서 

기침이 계속해서 나온 적도 있었다. 일을 하는데 햇님 아저씨가 간식을 주시기도 해서 쉬면서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으로 지원*현영이가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서 우리 모두 

먹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그곳에 있던 만화책을 보다가 또 고추를 닦고, 햇님 아저씨가 강에 가자고 해서 강으로 갔다.

강에서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 물에서 놀다가 다른 놀거리를 찾기 위해 위쪽으로 올라갔다. 위쪽으로 가니 조금

얕은 물이 나와서 건너편으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가지 않고, 더 위쪽으로 가 보니 물살

도 적고 물도 얕아서 건너려고 물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중간쯤 가니 물살이 엄청 세져서 휩쓸려서 깊

은 곳으로 떠내려 갈 뻔했다. 이때는 정말로 죽을 뻔하였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니 물살이 약해져서 건넜다. 다 건

너고 뒤쪽에 있는 바위에 앉아 건너면서 느꼈던 걸 얘기하면서 쉬고 있는데, 건너편, 우리가 있던 곳에서 선생님

이 재빨리 건너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무서운 그곳을 건너고 싶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가야 할 시간이라면 독촉하자 우리는 할 수 없이 건너려 하였다. 그때 햇님 아저씨가 우리 셋이 손을 잡

고 건너오라고 하셨다. 되돌아 갈 때는 더 쉬운 데다 손을 잡고 가니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홀딱 

다 젖어서 기침이 많이 나고 무척 추웠다. 

집에 돌아와서 여분으로 가져온 옷으로 갈아 입고, 저녁으로 나와 우혁이가 치킨 마요라는 음식을 했는데 조금 망

쳤다. 그래도 잘 먹고 방에서 제로게임을 했다. 벌칙으로 손목을 맞기로 했다. 내가 초반에는 많이 때렸지만 후반

에는 많이 맞았다. 게임을 하고 잤다. 

그 다음 날, 고추를 땄다.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땡볕에서 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 점심

을 먹고 고구마를 캐러 갔다왔다. 그리고 강가에 갔는데 이번에는 힘들게 강을 건너 조금 위험한 위치에 있는 돌

위에 있는데, 선생님이 오라고 했는데도 안 가고, 선생님이 우리쪽으로 건너오셔서 우리가 갔다. 

저녁을 먹고 전기 게임을 하고 9월 26일에 집으로 왔다. 


봉화 (홍우혁) 

봉화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 2011년 겨울에 갔던 적이 있었다. 이 두 끔찍한 경험의 차이점은, 

작년에 갔던 것은 놀러 갔던 것이었고, 이번에 가는 것은 일을 도와주려고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갔던 집은 독구리네였다. 그 아저씨를 독구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집 조카가 어릴 때 원래 별명인 독수리

를 '독구리'라고 불러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 집은 2003년에 지었는데 나무와 황토 같은 것으로 지었다. 그리

고 그 아저씨의 부인의 별명은 '물총새'였다. 그 유래는 잘 모른다. 

그집은 정말 산 속에 있었다. 정말 사회생활 안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사방이 모두 높은 산으로 막혀 있었고 

차를 타고 내려가면 낙동강이 있었다. 그 위에는 기찻길이 있는데 가끔 기차가 지나간다. 집에서 출발해서 그 외

딴 곳에 도착했을 때는 8시쯤 되었다. 

그 다음 날에는 햇님네라고 부르는 윗집에 있는 비닐 하우스에서 고추 닦는 일을 했다. 정말 고단한 일이었다. 

다시는 하기 싫다. 

그일을 다 하고 나서는 낙동강에 가서 놀았다. 작년 겨울에 갔을 때는 완전히 얼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꽤나 깊었다. 제일 깊은 곳은 최대 2미터쯤 될 것이었다. 그 강의 물살은 다리가 못 버틸 

정도로 빨랐다. 반대쪽에 있는 땅은 암벽이었다. 그래서 돌이 많았고 발바닥이 정말 아팠다. 샌들을 안 가져 간 

것이 후회되었다. 아무튼 반대쪽으로 갔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있어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강에서 놀고 나니 바지가 모두 젖어서 갈아입어야 했다. 가기 전에 챙긴 옷이 많아서 괜찮았다. 그날 저녁은 

나와 수용이가 했는데 정말 제대로 실패했다. 아무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밥도 잘되지 않았다. 

시간이 남을 때면 만화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큐브를 만졌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제로게임을 했는데 

벌칙은 손가락 두 개로 손목을 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때렸을 때 맞는 사람들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였다. 

내가 내 손을 때리지 못해서 어떤지는 몰랐다. 

그 다음날 아침은 미역국과 계란말이였다. 미역국은 괜찮았고 계란말이도 괜찮았는데, 한 사람은 망쳤다고 말했

다. 그날 오전에는 독구리네 밭에서 고추를 땄다. 그리고 또 강에 가서 놀았다. 물론 바지는 젖었다. 안 젖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손목맞기를 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 다음날은 조금 늦게 일어났다. 밥을 먹고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