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5월 21일 대내외 교육을 위한 자료입니다.

2012.05.17 08:35

김혜정 조회 수:1694


영혼과 함께 하는 책읽기


  지난 2년을 돌아보니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7번의 글을 써내야 했던 내게는 너무 빨리 다가오곤 해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셨던 독자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글을 쓰려니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뜸들이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야겠다. 책읽기는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 수 있다.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음식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의 양식인 책을 읽었을 때 우리의 마음도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건강한 우리 마음은 우리 몸과 삶 역시 건강하게 해주리라는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하고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책을 읽어야 한다.


  기대와 기다림 그리고 모방과 만남


  드디어 우리 반에 학급문고가 생겼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한 뒤로 공식적으로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읽지 말라는, 선생님의 이상한 주문을 2년 반이나 견디다 마침내 3학년 2학기가 되어 교실 뒤쪽에 책들이 줄줄이 꽂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집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왔고 모두가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학교에 오면 모두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고 쉬는 시간에도 뛰어놀지 않고 책을 읽었고 점심을 빨리 먹고 또 책을 읽었고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도 구석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책에 도통 관심이 없던 아이도 원래 책을 좋아하던 아이도 모두 책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아이들은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놀기도 하고 책도 읽는다. 다른 학년 학생들도 3학년 교실에 학급문고가 생겼다는 소문에 우리 교실에 찾아와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읽은 책을 또 읽고, 읽지 않은 책이 있는지 살펴보고 찾아서 읽고, 자기가 가져온 책을 다른 아이들이 잘 읽어주는지도 챙긴다. 책을 읽은 뒤 저절로 말이 터져 나오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내 짝꿍 최영대를 읽은 뒤 무섭다고 했다. 의아해서 무엇이 무섭냐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영대가 너무 불쌍한데 그런 아이를 아이들이 놀리고 괴롭히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고양이 학교는 아이들 사이에서 고양이 학교 놀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많은 아이들이 고양이 학교의 등장인물들이 되어 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양말 고양이, 어떤 아이는 러브 레터, 어떤 아이는 털보 선생님이 되었다. 책을 읽고 있는 아이 옆에 다른 아이가 다가가서 그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아이들의 삶 속으로 책은 깊이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책을 읽으라고도 하지 않았고 읽어도 된다고 했을 뿐이다. 기대를 품은 기다림은 많은 것을 이루어낸다. 아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공책에 쓴 글을 읽었고 부모님이 만들어준 책을 읽으며 서서히 읽기를 배워왔다. 그러면서 진짜 을 읽을 날을 기다려왔다. 이제 인쇄된 책을 읽을 수 있는 때가 되었고 아이들은 책이 주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나도 오랜 동안 기다려왔다.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간절하게 이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하엘 엔데가 이야기하는 수수께끼 같은 정열을 나도 가슴 속에 뜨겁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열이란 수수께끼 같은 것이고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열에 사로잡혀 버린 사람은 정열이 뭔지 설명할 수 없고,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 …………………………………………………………중략……………………………………………………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에게 정열이란 곧 책이었다.


오후 내내 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책에 빠져들어 읽으며 주위 세상을 온통 잊어버리고 배가 고픈지도 혹은 추운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다른 누군가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이제 자야지 하는 선의의 이유를 대며 배려한답시고 전등을 꺼버리는 바람에 남몰래 손전등을 켜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책을 읽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굉장한 이야기가 끝나 버리고, 자기가 사랑하고 또 감탄하고 걱정하고 희망을 걸었던 인물들,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보였을, 수많은 모험을 함께 했던 인물들과 헤어져야만 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또는 남몰래 눈물을 철철 흘려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하나라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지금 바스티안이 하는 짓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비룡소, 17-8, 2000)


  내 유년의 기억은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방은 사방이 책으로 가득했고 아버지는 늘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의 책꽂이를 놀이터 삼아 놀던 나는 어느새 책을 손에 잡고 읽고 있었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고 늘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는 책과 한결 가까워진다. 그러나 단지 책 읽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책에 대한 정열이 생기지는 않는다. 내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할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 이 책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였다. 하이디가 이모를 따라 산에 오르며 하나 둘 옷을 벗어 버릴 때, 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천장에 난 동그란 창을 통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볼 때, 도시로 간 하이디가 알프스 산을 그리며 몽유병에 시달릴 때 내 심장은 느리게 또는 힘차게 쿵쿵거리며 뛰곤 했고 나는 언제 어디서든 하이디와 함께 있었다. 나는 정말 하이디를 사랑했고 하이디의 삶을 동경했다. 이 사랑이 저 수수께끼 같은 정열을 내 안에 불러일으킨 것이다.


  내면의 그림 그리기


  나는 이런 정열이 아이들 가슴속에서 생겨나기를 누구보다도 바래왔다. 그러나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온 것일까?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문자를 해독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작은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할 때 등을 떠밀려 책을 읽으러 오는 많은 아이들이 단지 문자를 해독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다음과 같은 일이 그 아이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두꺼운 나무줄기가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나 바람이 나무 우듬지를 쏴쏴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네 사자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도 들었다. 심지어 이끼 냄새와 숲의 흙 냄새까지 난다고 믿었다. (위 책, 42)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치 그림처럼 내 안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 그림은 살아있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스티안처럼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다. 그만큼 생생한 이미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떠올려 보내주는 내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책은 그래서 독자가 문자를 잊어버리게 하는 책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책을 읽어줄 때 우리의 이해력은 늘어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더 많아진다. 문자라는 추상적 기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언어가 가지는 깊고도 풍요로운 자양분속으로 뛰어들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요즘 듣기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읽기 이전에 듣기가 먼저 충분히 이루어져야만 책을 읽는다는 본질적 의미에 충실한 독서가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자신이 쓴 책이 백 년쯤 뒤에는 이야기꾼들에 의해 들려주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다. 읽기보다 더 근원적인 듣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듣기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듣기에 관심이 있는 분은 잃어버린 지혜, 듣기(서정록, 샘터, 2009)를 읽어 보시면 좋겠다.


  김혜연의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비룡소, 2011)에 나오는 여섯 살짜리 진주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진주는 책을 읽다 멋진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고 상상한다. 단지 검은 색과 흰 색만이 존재하는 건조한 지면을 떠나야 실제 그 기호들이 떠올리고자 하는 그림들이 진주 앞에 펼쳐진다. 이러한 점을 더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트 카터, 아름드리, 1996)에서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다.


  할머니가 기다랗게 꼰 머리를 마루 위까지 늘어뜨린 채 책에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천천히 읽어가노라면, 할아버지는 흔들의자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귀를 기울여 듣고 계셨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흔들의자가 갑자기 딱 멈춰서면, 아니나 다를가, 그때는 이야기가 한창 재미있어지는 때였다.


할머니가 <맥베스>를 읽어줄 때는 오래 된 성과 마녀들이 어둠속에서 되살아나 우리 집 벽에 모습을 비추곤 했다. 겁에 질린 나는 할아버지의 흔들의자 옆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할머니가 칼부림이 일어나는 장면을 읽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는 의자 흔드는 것을 멈추고, 맥베스 부인이 여자답게 처신하고 남편 맥베스가 정당하게 하려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위 책, 27)


  여기서는 상상을 넘어서서 책을 읽어주는 시공간의 변형이 일어난다. 실제와 상상이 하나로 겹쳐지는 신비한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은 마법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세월을 뛰어넘어 그 옛날의 일이 지금 현재 나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이렇게 듣기는 신비하고도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진주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혼자 책을 읽던 여섯 살짜리 꼬마는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방에서 어떤 아줌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는 소리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 한 무리가 어떤 아줌마 둘레에 모여 있었다. 아줌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헤,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진주도 아이들 사이에 슬쩍 끼어 앉았다. 책을 읽는 아줌마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중략 …………………………아줌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진주는 이야기 속의 들쥐들처럼 몸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 도서관, 35-36)


  아직 어린 진주에게 누군가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은 따뜻함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 속에서 프레데릭이 따뜻한 햇살을 모으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리를 통해 오고가는 온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생명의 물


  린드그렌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여 책들을 사 모으고 같은 책을 반복하여 읽고 또 읽는 적극적인 독자인 비읍이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비읍이가 린드그렌 할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린드그렌 선생님,


저는 선생님 책을 일곱 권 가지고 있어요, 모두 열 번도 더 읽었지요. 저는 잠자기 전에 선생님 책을 조금씩 읽어요. 엄마가 선생님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책을 읽어 주지 않는답니다. 그렇다고 나쁜 엄마는 아니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주거든요. 우리 엄마는 정말 요리 솜씨가 좋아요.


오늘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제가 저한테 책을 읽어줘요. 삐삐는 자기한테 자장가도 불러 주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 되겠어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유은실, 창비, 44)


  딱 열 살하고 반년을 더 산 비읍이는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상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상상과 현실을 연결할 줄 안다. 비읍이는 영리하게도 스스로에게 책을 읽어준다. 내가 읽어주는 것을 내가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책을 음미할 수 있고 진정으로 책을 읽고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신과 이야기를 듣는 자신을 연결시킴으로써 비읍이는 자기 자신을 전체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읍이는 자기 자신을 조금씩 성장시켜 간다. 사고뭉치인 에밀을 이해하는 것에서 자기 반 장난꾸러기 지호를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센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새로 산 우비와 장화를 입고, 신고 물웅덩이에서 팔짝팔짝 뛸 기대에 부풀었던 비읍이는 가난한 친구를 위해 기꺼이 그 기대를 접는다. 그리고 다시 린드그렌 할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상상하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니에요. 상상하는 힘도 세졌어요. 요즘은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쪽으로 머리가 막 돌아가요.


그래서 오늘은 지혜 상상을 많이 했어요. 지혜가 큰 운동화를 신고 오는 마음이 어땠을까. 내 새 우비랑 장화를 보고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까. 내가 물웅덩이에서 폴짝폴짝 뛰면 얼마나 부러울까. 이런 상상이 계속되는 거예요. (위책, 64)


  비읍이의 마음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비읍이의 상상은 왠지 너무 착하고 일상적이어서 너무 현실과 착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우주는 아주 커다랗고 책은 우리를 거기로 데려갈 수 있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자유로워진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바스티안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삶이 힘겨웠던 바스티안이 상상세계로 가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필요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이 달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던 바스티안은 결국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현실의 이면을 보게 된다. 보이는 것 뒤에 놓여있는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바스티안에 의해 살아난다. 두 세계는 순환의 고리처럼 영원히 서로에게 작용한다. 그곳에서 바스티안은 창조자였다. 그러나 건강한 상상은 그 세계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이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 끝없는 이야기를 옮긴 허수경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엔데가 말한 진실이란 바로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꿈의 광산에서 바스티안에게 속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바로 아버지(현실)로 되돌아가서 아버지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환상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를 연결하고 서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바스티안이 할 일이었습니다. (끝없는 이야기3, 253-254)


  바스티안은 상상세계에서 아버지를 위해 생명의 물을 구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생명의 물을 다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바스티안은 스스로가 생명의 물이 되어 있었다. 상상세계에서의 삶을 통해 바스티안은 건강해졌고 생명력으로 충만해졌다. 그 생명의 힘은 아버지를 감싸고 변화를 이루어낸다. 진주와 비읍이도 마찬가지다. 말을 더듬는 진주의 엄마는 진주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토록 책을 싫어하던 비읍이의 엄마도 린드그렌의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책이 갖고 있는 생명력은 그렇게 우리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끝은 결코 끝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또다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가지를 뻗어나가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지면과 시간 관계상 끝이라고 외치는 이야기들은 사실은 끝이 아닌 것이고 수많은 연작이나 속편이 나오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