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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 후에

2012.04.22 20:27

박지연 조회 수:1643

요즘 세상에 어디서 쟁기를 구하겠으며, 심지어 그 쟁기로 논을 갈겠는가.
게다가 소가 끄는 쟁기도 아닌, 사람이 끄는 쟁기라....

예전에 쉴러 교수는 바지를 걷고 논바닥으로 들어갈 때 발도르프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논 가장자리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논농사에 대한 화려한 설명과 그림만으로는,
교사가 배울 수 없으며,
당연한 결과로 어린이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배움이 좀더 원형적인 것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사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원형적인 세계에 있으므로, 우리 어른들이 그들의 세계로 가는 것일수도있지만)
모든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모진^^ 애를 쓰고 있다.
땅을 몇 미터씩 파서 뒤엎는 생명역동농법의 기본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쟁기를 들고 3학년들과 논에 나간 나는
이런 나의 생각들 역시 아이들의 무한한 경험과 상상 앞에서는 그만 '틀에 박힌'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쟁기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꿈쩍도 않는 쟁기를 움직이기 위해
'황금'과 '배미'로 나누어 두었던 모둠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쟁기에 달라붙었다.
쟁기가 움직이기 전과 처음 움직였을 때의 그 순간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뭄 끝에 비,
오랜 일상 끝에 잔치,
그리고,
처음 글을 알게 되었을 때의 환희
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탄성과도 같은 말을 했다.
"아, 이렇게 힘든데, 동물들은 어떻게 이걸 끌었을까!'

한쪽에서는 볏짚을 모아 태워 연기가 자욱했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불씨를 살려놓았노라, 자랑을 하기도 하고,
볏짚을 더 많이 긁어다 놓았노라 말하고,
볏짚이 정말 끌어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 모두에 어찌나 진지한지...

어떤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아까 제가 눈을 감고 있다가 떴는데, 앞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
"앞에 안개가 자욱한 거예요. (연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정말 천국에 와 있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옷 갈아입는 3학년 교실에 가 보니,
아이들 얼굴이 기쁨에 빛나고 있었다.
천국에까지 다녀온 아이가 있는 공간이다. 어찌 빛이 나지 않겠는가.

나는 중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논쟁기질 결과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
아이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논을 반 넘게 갈았어요"
라고.